기업 이미지도, 개인 명함도 부드러운 글자체로

시시콜콜한 일상을 문화로 만드는 젊은이들 선호

"부드럽고 포근해 보이잖아요. 따뜻한 느낌도 나고요."

유아용품 업체 아가방은 최근 브랜드 이미지의 상징인 BI(Brand Identity)를 동글동글한 영어 소문자 'agabang'으로 바꿨다. 옆엔 둥근 꽃 모양도 그려 넣었다. 세밑 우리투자증권이 내놓은 자산관리상품 '옥토(octo)'도 워드마크를 영문 소문자로 정했다.

기업 이미지부터 개인의 명함까지, 영어 소문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 냄새가 나고 다정다감하며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는 이유다. 서울시나 산업은행같은 공공기관도 '소문자 열풍'에 가세했다. 네이밍(naming) 전문업체 '크로스포인트'는 "소문자로 제품이나 회사 이름을 표기하는 곳이 작년 한 해 50곳이 넘었다"고 추산했다.

◆소문자는 속삭인다

'타이포그래피 에세이(Typography Essay)'의 저자 에릭 슈피커만(Spiekermann)에 따르면 소문자는 '낮고', '내부지향적'이다. 각각의 글자는 마치 인체처럼 '어깨'와 '몸 면적', '키', '다리 길이'를 지닌다. 소문자들은 대개 글씨 윗부분인 '어깨'가 작고 둥글며, 대문자보다 '키'가 작다. 알파벳 소문자 'a'가 대표적이다. 슈피커만은 "소문자는 속삭이는 문자"라고 정의했다.

'핫 트렌드 40(HOT TRENDS 40)'을 쓴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도 "소문자 열풍은 '소심한'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한, 이른바 '마이크로 블로깅(micro-blogging)'의 도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미니홈피나 생활만화에 열광하는 요즘 사람들이 작고 동글동글한 소문자에 감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06년 10월 문을 연 미국 웹사이트 '트위터'는 '소문자형 네티즌'들이 몰려드는 대표적인 공간. 시시콜콜한 일상을 140자 내로만 올릴 수 있게 돼 있는 이 블로그의 워드마크 역시 'twitter'다. 김 소장은 "요즘 '골방환상곡' 같은 생활 만화가 유행하는 것처럼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문화로 만들어내는 젊은이들일수록 소문자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기기 회사 아이리버(iriver)도 최근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옥 대리의 정말 진솔한 이야기'라는 만화를 선보였다. 아이리버측은 "이탤릭체 스몰 아이(i)로 대표되는 우리 제품의 컨셉트와 소심한 직장인의 투정이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며 "대수롭지 않는 일상이나 잡다한 수다를 소문자 아이(i)를 통해 풀어낸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도 '소문자' 대세

소문자 열풍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넘어가는 시대의 상징이라는 분석도 있다. 네이밍 전문업체인 '브랜드 메이저'의 손봉선 브랜딩전략팀 실장은 "소문자를 쓰면 보다 역동적이고도 가치창조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며 "하드웨어를 넘어선 소프트웨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들이 소문자 CI(Corporate Identity·기업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서울시가 최근 내놓은 장기전세주택의 로고는 대문자와 소문자를 혼합한 '시프트(SHift)'. "SH공사(옛 서울도시개발공사)가 주는 직선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람 냄새를 주기 위해 소문자를 덧붙였다"는 설명이다. 산업은행(kdb)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도로공사(ex)가 CI를 모두 소문자로 바꾼 것도 모두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한국도로공사측은 "단순한 건설이나 관리를 벗어나 역동적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기업, 사람 냄새가 나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CI를 소문자로 바꿨다"고 밝혔다.

◆소문자 곡선의 미학

곡선이 많은 것도 소문자 인기에 한몫했다. 최근 곡선형 전화기를 내놓은 한 전자제품 회사는 "직선은 슬프다. 안아줄 수 없으니까"라는 카피를 내세운 광고로 소비자 감성을 자극한다. '크로스 포인트'의 조성래 디자인실장은 "대문자 A와 달리 소문자 a는 사과처럼 생겨서 달콤하고 사랑스런 느낌, 기대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느낌을 준다"며 "곡선 열풍에 힘입어 소문자들이 전성시대를 맞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명함을 소문자로만 채우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 명함디자인회사 '소풍'에 따르면 작년 소문자로만 명함을 새겨달라고 들어온 주문은 약 50여건으로 3~4년 전보다 10배 가량 늘어났다. '풍경 애드컴'의 박재홍 과장은 "최근 명함에 이름을 소문자로 새겼는데 글씨가 작고 귀여워 받는 사람들 반응도 좋다"고 했다.

출처 : [송혜진 기자 enavel@chosun.com] 조선일보

by º(^㉦^)º곰돌군 2008. 1. 18. 09:27